2025 칸 국제광고제에서 되새긴 '실존의 힘'...무빙월스 그룹 스리칸스 라마찬드란 CEO 참관기
칸을 걷고, 배로 떠나고, 와인잔 너머로 바라본 창의성의 본질
2025년 칸 국제광고제(Cannes Lions International Festival of Creativity)는 지난 6월 16일부터 20일까지 프랑스 남부의 해안 도시 칸(Cannes)에서 열렸다. 마케팅과 광고, 브랜드 산업 종사자들에게 이 행사는 말 그대로 ‘창의성의 성지’다. 전 세계에서 모인 창의적 아이디어가 시상되고, 논의되며, 때로는 그 정의마저 새롭게 쓰이는 자리다.
광고 업계에서 수십 년을 보낸 필자에게도 칸은 여전히 놀라움을 주는 공간이었다. 단순히 대담한 캠페인을 전시하고 화려한 파티가 열리는 곳만은 아니다. 본질적으로 칸은 왜 우리가 이 일을 시작했는지를 다시 떠올리게 하는 자리였다. 사람들과 연결되고, 문화를 움직이며, 의미 있는 이야기를 전하려는 그 시작점 말이다.
칸에 도착했을 때는 일정이 가득 차 있었고, 기대도 컸다. 돌아오는 길에는 지친 발과 넘치는 아이디어, 그리고 햇볕에 그을린 얼굴이 함께했다. 이 도시를 경험하는 방식은 단순하지 않다. 공식 행사장에서는 패널 토론과 시상식, 박수갈채가 이어지고, 그 이면에서는 배 위에서 계약이 오가고, 늦은 밤 와인잔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가 피어나며, 행사장 사이를 걷는 동안 자연스럽게 대화가 흐른다. 필자는 하루 평균 2만 보를 걸으며 예정된 콘텐츠보다 뜻밖의 만남에 더 집중했다.
한 포뮬러원(F1) 드라이버가 이끈 세션은 특히 기억에 남는다. 그는 속도가 아닌 ‘집중력’에 대해 말했다. 가속 전에 기다릴 줄 아는 인내, 행동 전에 관찰할 줄 아는 태도. 끊임없이 움직이고 바쁜 일정이 이어지는 칸에서 이 메시지는 유난히 크게 다가왔다. 창의성은 때때로 더 빠른 속도가 아닌, ‘멈춤’에서 비롯된다.
올해의 주인공은 브라질이었다. 칸 역사상 처음으로 ‘올해의 크리에이티브 국가(Creative Country of the Year)’로 선정된 브라질은 총 107개의 라이언을 수상했고, 이 가운데 6개는 그랑프리, 1개는 티타늄 라이언이었다. 그러나 숫자보다 더 인상 깊었던 것은 수상작의 본질이었다. 많은 작품이 실세계에서 구현된 콘텐츠였다. 대담한 옥외광고, 거리에서 벌어진 스토리텔링, 사람들의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마주한 설치물 등 ‘현장성’을 바탕으로 한 작품들이 주목을 받았다.
이러한 흐름은 인도, 싱가포르 등 여러 국가의 수상작에서도 나타났다. 디지털 플랫폼과 데이터를 중시하던 업계가 다시금 ‘실세계에서의 상호작용’에 주목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이는 필자에게도 개인적으로 큰 울림을 주었다. 필자는 오래전부터 뛰어난 아이디어는 스크린 너머, 도시와 거리, 사람들이 사는 공간에 존재해야 한다고 믿어왔다. 소비자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갈 때 비로소 진정한 연결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이번 칸에서는 숙소도 색달랐다. 고급 호텔 대신 동료들과 함께 배에서 6일을 머물렀다. 오랜 업계의 동반자인 배리 커플스(Barry Cupples), 그리고 슬레지해머(SledgeHammer)의 비슈누(Vishnu)와 함께한 그 배는 회의실이자 숙소, 아이디어 실험실이자 휴식 공간이 됐다. 아침에는 갑판에서 커피를, 밤에는 별빛 아래에서 와인을 기울이며 진솔한 대화를 나눴다. 지금도 가만히 서 있으면 그 흔들림이 느껴질 정도로, 그 리듬은 칸 전체의 경험을 단단하게 만들어줬다.
물론 칸은 완벽하지 않다. 공식 애플리케이션은 개선된 네트워킹 기능을 약속했지만 아쉬움이 컸다. 창의적인 만남이 단지 파티에서 우연히 이뤄지기보다는, AI 기반의 매칭 기능이나, 공항 출발지부터 시작되는 팝업 라운지 같은 시스템을 통해 보다 효과적이고 사전적인 연결이 가능해졌으면 한다. 칸에 도착하기도 전에, 창이공항이나 도하, 쿠알라룸푸르 등지에서부터 대화가 시작될 수 있다면 더 의미 있는 네트워크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도시 자체가 던지는 메시지도 있었다. 어느 날 밤, 루프탑 파티를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거리에서 구걸하는 사람들을 마주쳤다. 불과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는 고급 와인이 흐르고 있었지만, 바로 그곳에는 현실의 불균형이 존재하고 있었다. 물론 세상이 완벽하길 기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전 세계 브랜드의 문제를 풀어내는 상상력과 자원을 가진 우리가, 그 축제를 여는 도시의 현실에도 조금은 상상력과 연대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끝으로, 칸의 상징 중 하나인 ‘거터 바(Gutter Bar)’에는 이번에 결국 가지 못했다. 창의적 만남이 새벽까지 이어진다는 그 전설의 공간. 일정상 타이밍이 맞지 않았다. 그런데 그 미완의 경험조차 왠지 반가웠다.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에서 주인공이 메카를 꿈꾸지만 끝내 떠나지 않는 것처럼, 어떤 이야기는 비워두었기에 더 아름답다.
칸은 혼란스럽고 자극적이며 모순된 곳이다. 수십억 원대의 아이디어가 명함 뒷면에 끄적여지고, 오후에는 성공사례로 박수를 받으며, 밤에는 요트 위에서 윤리를 토론한다. 이곳에서는 창의성이 아직 ‘통화’로 살아 있고, 그것은 CPM 수치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간의 ‘연결’로 측정된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반드시 한 번쯤은 경험해보길 권한다. 여러 번 다녀온 사람이라도, 이번엔 조금 더 천천히 둘러보며 새로운 시선을 가져보는 것도 좋다. 필자는 내년에도 다시 찾을 예정이다. 아마 더 좋은 계획과 더 편한 신발을 준비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같은 열정과 같은 시선, 같은 불꽃을 품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음엔, 어쩌면 거터 바에도 들를지 모른다. 아니면 또 한 번 다음을 기약하게 될 수도 있다. 어쨌든 이번 칸에서 얻고자 했던 이야기는 이미 충분히 가슴속에 담아왔다.